이상한 사람들/이상한 사람들을 만났다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Ep.1

워킹맘김대리 2020. 11. 12. 20:41

아침에 일어나 확인한 휴대폰, 밤새 온 연락
부재중 통화 #통, 메세지 '사랑해, 보고싶다'

@제주 어느 해안도로

Ep. 1-1
2014년 6월, 팀 선배 중 하나였던 A과장은 어느 날 점심시간 나를 따로 불러, 내가 여자 신입사원으로 환영받지 못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이야기는 길었고, 이유불문 결론은 억울하지만 내가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 날 이후로 A과장은 종종 함께 식사를 같이 하기도 하고, 간혹 고객과의 술자리에 나를 소개시키기도 했다.

여름으로 넘어갈 쯤, A과장 그리고 A과장과 친한 우리 팀 B대리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고 2차 술자리로 이어졌다.
그 술자리에서 'A과장의 아내는 A과장이 씻지 않으면 잠자리를 하지 않으려한다.' 'B대리는 여자친구와 해외여행가서 오일 마사지를 해주고 같이 잠자리를 했다.'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불쾌했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쭉 나는 못 들은 척 평소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어느 날 우연히 그 날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A과장과 B대리 모두 그 날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Ep. 1-2
1년도 채 안 되어 팀 이동을 했고, 당시 팀장은 여자가 할 수 없는 일이라 판단했던 것 같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당사업 영업조직에는 여자 구성원이 한명도 없기 때문이다.
팀 이동 후 A과장은 더 편하게(쉽게?) 내게 1:1 저녁 식사를 제안하곤 했다.

2016년, A과장으로부터 늦은 밤 잠들 시간에 드문드문 연락이 왔다.
가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사랑해', '보고싶다'라고 카톡이 왔고, 나는 그것을 '장난치지 마세요' 혹은' 얼른 주무세요' 라고 회신하며 'ㅋㅋ'거리며 농담으로 넘어가려 했다.
그러다 정도가 심해지는 듯 하여, 어느 날 부터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카톡은 읽씹했다.

같은 팀일 때, 또 팀을 옮기고 나서도 업무상 연락이 필요한 경우가 있어, 완전 차단하지 못했고 그런 식의 연락이 오면 주로 읽씹했다.
읽씹한 날 아침에는 '기분이 나쁘다, 쌩까지마라' 등의 톡이 또 오곤 했다.
또 어떤 날은 아주 늦은 밤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
그렇게 피하고 또 피하다 업무상 연락이 필요없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카톡과 전화 모두 차단해버렸다.

A과장 일로 고민할 당시, 타 사업의 여자 선배에게 상담 차 이런 경우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잘 해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선배도 유사한 일로 마음 고생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심지어 1박2일로 회사 W/S을 갔을 때, A과장이 밤에 따로 보자고 연락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선배도 이러한 일들을 공론화, 이슈화 한 적은 없었고 피하거나 무시했었다.

이 후, 해외영업 경력을 오래 쌓은 A과장은 해당 분야에서 인정받고 승진 해 부장이 되었다.
업무는 엮이지 않았지만 사무실에서 오가며 종종 마주쳤다. 혹시 내게 말을 걸까봐 모르는 사람인 마냥 시선을 피하며 지나치거나 혹은 내가 피해다니기도 했다.

Ep. 1-3
2017년 봄, 부산지사 출장 겸 팀 W/S을 갔다. 전체 8명이었고, 여자는 나와 운영원 동생뿐이라, 둘이 같이 방을 썼다.
그 날 기분 나쁜 일이있어, 둘이 밤을 지새우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때 알게 되었다. A부장이 그 운영원 동생에게도 그랬다는 것을.
심지어 계속 유관 업무를 하고 있어, 나처럼 차단하거나 연락을 잘라내지 못해 더 심하게 당했었다.
A부장은 그 동생에게 톡 연락은 물론이고, 단 둘이 저녁을 먹자해 술을 권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아내가 집에 있다고 거짓말하며 집에서 같이 한 잔 더 하자하여 따라 가보니 비어있는 집이었고, A부장이 다른 일을 하는 사이 겨우 집에서 빠져나왔다고 했다.
이 운영원 동생 역시 이러한 일을 겪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 하고 피하기만 했었다.


또 시간이 지나 2017년 겨울, 다음 해에 내가 한 사업의 TF팀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동 전 TF 담당 임원과 면담을 하며 TF구성원에 대해 물었는데, 구성원 후보로 A과장 아니 A부장이 있었다.
그래서 담당 임원께 'A부장과 한 팀에서 일 할 수 없다고, A부장이 꼭 필요하다면 나를 타 조직으로 이동 시켜달라'고 부탁하며 그 동안의 일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담당 임원은 그 부장을 TF멤버 후보에서 제하기로 결정했고, 나는 또 그렇게 피했다.

적극 대응하지 못한 나는 아직도 A부장을 피한다. 참 용기 없고 어리석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