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Ep.7

2021. 1. 18. 15:38이상한 사람들/이상한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이라도 문제 삼는 것이 옳을지 고민이 된다.

@제주 바다


2019년 8월 H팀장과 중국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중국 조직의 큰 행사가 있었고 이 후 참여했던 전 구성원이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H팀장과 출장자 숙소 호텔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중국 주재원인 K팀장과 현지 채용 과장이 H팀장에게 '2차 가자'며 연락이 왔다.
호텔에 도착하니 K팀장과 과장이 1층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K팀장, 현지채용 과장, H팀장, 나 이렇게 네명이서 2차로 호텔 로비에서 와인 한 병을 시켜 술자리를 가졌다.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K팀장이 내 손을 잡았다. 내가 손을 빼면 다시 잡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맞은 편에 앉았던 H팀장은 분명 이를 봤을 텐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화 도중, H팀장이 '우리 팀원들이 잘 못 하면 개박살을 낸다. **대리(나)도 많이 혼난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를 듣더니 K팀장이 나를 한참 쳐다 보았다.
그리고 조금 후에 내 손을 본인 입에다 가져다 대고 내 손등에 뽀뽀를 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황해 손을 빼며 도움을 요청하려 H팀장을 쳐다봤으나, 그는 못 본척 내 눈을 피했다.

상당히 기분 나빴고, 곧 먼저 일어나 내 방으로 돌아가고자 일어섰다.
내가 일어서자 K팀장이 따라 일어섰고, 팔로 크게 하트 표시를 하며 내가 지나가려던 길을 막아섰다.
그리고 나를 안으려 시도 했으나, 같이 있었던 H팀장도 현지채용 과장도 나를 돕거나 K팀장을 막으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K팀장을 빙 둘러 술자리에서 나왔다.

다음 날 중국 사무실로 출근해 K팀장을 만나기가 진저리나게 싫었다.
2개월 전 내 허벅지를 만지고 사과를 했던 H팀장이 본인 팀원에게 일어난 성추행을 보고도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도 너무 화가났다.
또 당시 타사 J팀장의 성추행 일로 인사위원회를 앞두고 있었고 심리상담도 받고 있던 터라 더욱 괴로웠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 하고, 아침일찍 호텔 로비에서 H팀장을 만나 중국 사무실로 함께 출근했다.

중국 사무실은 한국과 다르게 비교적 작아, K팀장을 쉽게 만날 수 있어 회의실에서 나가지 않았다.
화장실 가는 것 조차, 빙 둘러 가더라도 K팀장 자리 근처는 지나지 않았다. 판단이 서지 않은 상태라 대화하고 싶지 않아 사내 메신저도 꺼두었다.

한 사무실에 같이 앉아있던 H팀장과도 일부로 별 말 없이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H팀장이 'K팀장이 **대리(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던데~ **대리 메신저도 꺼져있다네?'라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K팀장과 H팀장이 이렇게 나올 줄 예상하지 못 해 당황한 나머지 '아, 네' 라고 대답해버렸고, 별 수 없이 메신저를 켰다.

곧 '잘 쉬었남? 어제는 쏘리~'라는 메시지와 함께 K팀장과의 채팅창이 시작 되었다.
차 한잔 하자는 제안을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했고, 어색한 대화를 이어가다 다음에 내가 중국으로 다시 출장을 오거나 본인이 한국으로 출장을 오면 맛있는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밥이고 차고 언제든 내가 거절하면 그만이었기에 대화를 빨리 마무리 짓고 싶어 알았다고 대답하고 채팅을 끝냈다.
그리고 나는 머리를 세게 한대 맞은 마냥 잠깐동안 멍해졌다.

H팀장은 곧 내게 다른 업무 지시를 내렸고, 정신없이 일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러 이동하는 그제서야 J팀장의 인사위원회, K팀장과의 일, H팀장과의 일이 머리속에서 뒤섞였다.

차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내내,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 H팀장과 별 대화를 하지 않았다.
한꺼번에 이런 일이 쏟아져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비행기가 이륙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참을 울었다.

H팀장의 내 허벅지에 손을 올린 그 성추행 건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한 이후 공론화하지 않은 것에 대해 또 후회했다.
또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H팀장이 K팀장에게 빨리 사과하고 마무리 지으라고 조언 한 것은 아닐까, K팀장은 '쏘리~'라는 메세지를 보냈기에 잘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