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Ep.4

2020. 12. 11. 12:07이상한 사람들/이상한 사람들을 만났다

늦은 밤 여자 혼자 집에 가는 건 무섭지만,
술취한 남자가 데려다 주는 건 더 무섭다.

@ 어느 가을 날 서울숲


2016년 여름이었던가?
퇴근시간이 겹친 몇몇 선배들과 간단하게 저녁을 먹기로 했다. 역시 간단하게 끝내지 못하고 1차에서 소주를 마시고, 2차 맥주집까지 길게 이어졌다.
같이 저녁을 먹은 사람들 모두 제법 취했다.

저녁 멤버 중 한 명인 G부장내게 따로 한 잔 더 하자며 3차 가자고 했다.
나는 물론, '시간이 늦었어요', '내일 출근도 해야하는데 이미 많이 마셨어요'라며 거절했다. 집에 가겠다고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G부장은 내게 굳이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몇번이고 거절했는데 술 취한 G부장은 말이 통하질 않아 결국 택시에 같이 탔다. 난 집 근처에 내려 얼른 집으로 들어가고, G부장은 택시에 태운채로 보내야겠다 생각했다.

집 근처쯤 와 택시를 새워 혼자 먼저 내리려는데, G부장이 막무가내로 따라 내렸고 꼭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어떻게하면 집에 혼자 들어갈 수 있을지 계속 생각했다.
정말 답답해지고 있는 찰나, G부장이 "라면 먹을까? 라면 하나 끓여줄래?"라고 물었다. 순간 정신이 또렷해지며 빨리 대처를 해야한다는 판단이 섰다.

도저히 그냥 집으로 갈 것 같지 않은 G부장을 데리고 바로 앞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G부장을 편의점 식사하는 곳에 앉히고, 컵라면 두 개를 사서 포장을 뜯고 물을 담아 그 앞에 놓았다. 그리고 막 분주하게 움직이는 척하며 만취한 G부장을 두고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갔기에 그 이후는 모른다. G부장이 정말 라면을 먹고 갔는지, 거기서 쓰러져 잤는지, 언제 집으로 돌아갔는지.

다음 날 아침 출근길, 2차로 갔었던 맥주집에서 우리가 두고간 물건이 있다고 전화가 왔다. 예약을 막내인 내가 했기에 내 번호로 연락이 온 듯 했다.
가보니 G부장의 안경이 있었다. 잠깐 고민했지만, 안경을 받아 나왔다. 좀 일찍 나온터라 사무실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G부장도 출근 전이었다. 별 메모 없이, G부장 책상위에 안경을 두었다.

출근한 G부장은 안경을 한참 내려다 보는듯 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씨, 내가 어제 실수 한 거 없지요?"